- 문장에도 쉼표가 있듯, 우리의 삶에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 화천 파로호 전경]
사람은 쉬지 않고 달릴 수 없다.
문장에 쉼표가 있어야 숨을 고르고 의미를 이어갈 수 있듯, 우리의 삶에도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늘 바쁘게 살아간다. 시간에 쫓기고, 해야 할 일에 쫓기고,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잊고 산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자연을 찾는다.
캠핑은 나에게 여행이 아니라 삶에 쉼표 하나를 찍는 시간이다.
텐트를 세우고 의자를 펼치는 순간부터 마음의 속도는 조금씩 느려진다. 도시에서는 들리지 않던 바람 소리와 물소리, 새소리가 그제야 귀에 들어온다. 자연은 "쉬어 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묵묵히 있을 뿐인데, 우리는 그 곁에서 비로소 쉼을 배우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혼자 떠난 로잉캠핑은 화천 파로호 비수구미였다.
출발하기 전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넓은 호수를 홀로 노를 저어 캠핑장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노를 한 번, 두 번 저을수록 마음속 소음도 하나씩 사라졌다.
엔진 소리 대신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잔잔한 물결이 호수 위를 채웠다. 어느새 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사진 : 화천 파로호 비수구미 풍경]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뒤 버너에 물을 올렸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캠핑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은 말없이 빛나고 있었고, 호수는 거울처럼 고요했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오직 나와 자연만 있었다.
그날 비수구미에서 자연은 내게 첫 번째 쉼표를 건네주었다.

[사진 : 파로호 비수구미에서 로잉보트와 캠핑]
그 후에도 나는 삶이 조금 버거워질 때마다 자연을 찾았다.
어머니를 보내드린 뒤 처음 맞는 생일을 앞두고, 또 하나의 쉼표를 만나기 위해 형제들과 길을 나섰다.
먼저 곡성에서 어머니 성묘를 마친 뒤, 고향인 구례로 향했다.
성묘를 마친 후 점심으로 맛본 생비(생고기 비빔밥)는 담백하면서도 신선한 맛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잠시 슬픔을 내려놓고 형제들과 웃으며 식사를 나누는 시간은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이후 천은사로 향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상생의 길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쉼 없이 흐르는 계곡물, 숲을 스치는 바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우리 대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천은사에서 자연은 두 번째 쉼표를 건네주었다.
[사진 : 천은사 상생의 길]
저녁에는 화엄사 인근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인근 식당에서 맛본 버섯전골은 이번 여행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음식이었다.
송이버섯의 깊은 향, 싸리버섯의 쫄깃한 식감, 능이버섯의 진한 풍미가 어우러진 국물은 산의 맛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좋은 여행에는 늘 좋은 음식이 함께한다.
그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 끼가 아니라, 그날의 풍경과 사람, 그리고 감정까지 함께 기억하게 만든다.

[사진 : 구례 화엄사 계곡 풍경]
다음 날 아침에는 구례 토지면에서 다슬기해장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로 몸을 녹인 뒤 연곡사 피아골 계곡을 천천히 걸었다.
맑은 계곡물은 바위 사이를 쉬지 않고 흘렀고, 숲에서는 새소리와 매미 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산책을 마친 뒤 연곡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고요한 산사에는 조용한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자연이 우리를 위로하려 애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진 : 구례 연곡사 경내]
여행의 마지막 점심은 염소전골이었다.
형제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를 추억했다.
그 식탁에는 음식보다 추억이 더 많이 오갔다.
시간은 흘러도 가족은 기억을 함께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연은 그 기억을 더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다.
[사진 1 : 버섯전골]
[사진 2 : 다슬기해장국]
[사진 3 : 염소전골]
우리는 흔히 자연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산은 산대로, 계곡은 계곡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그 자리를 지킨다.
우리는 잠시 그 곁에 머물 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연을 떠날 때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다.
캠핑은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잠시 멈추어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문장 속 쉼표 하나가 글의 호흡을 이어주듯, 자연이 건네준 작은 쉼표 하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걸어갈 힘이 되어 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연을 찾는다.
다음 편 예고
「캠퍼의 마음⑦」 가족과 함께하는 캠핑의 행복
캠핑은 혼자여도 좋지만, 함께라서 더 따뜻한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텐트 앞을 뛰어다니고,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나누며, 모닥불 앞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 다음 편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캠핑이 우리에게 남기는 소중한 추억과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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